있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사진의 방식과도 같이 표현되고 보이는 모든 것은 복사물의 한 측면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복제와 복사라는 방법론이 적극적으로 취해짐으로써 미술이 세계가 내포한 의미들에 대해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는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술
예술과는 구분되며 이러한 그의 태도는 미술제도와 미술관의 권위를 거부했다고 볼 수 있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와 같은 개념미술가 외에도 미술관의 제도와 권위에 대한 반발로, 행위미술, 환경미술, 대지미술...등 비 물질성을 표방하는 예술이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에 다수 분출되었다. 이들은
미술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미술사적으로 미술의 상업화, 혹은 기관화에 반대한 작가들은 예술 매체와 표현의 영역을 넓혔고
다양한 비판 이론들이 미술계에 섭렵되도록 하였고
미술관이나 미술비평의 기능을 또한 확대하였다. 특히 미술관이 아닌 다른 기관들의 탄생
작품의 배열과 작업원리에 있어서 개념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똑같은 단위체를 반복하여 구조와 형태에 있어서 환원성을 드러내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애드 라인하르트가 1962년 미니멀리즘 회화에 대하여 "그것은 비대상적이고, 비재현적이고, 비이미지적이고, 비표현주의적이고, 비주관적인 것
배척했던 방법들과 행위들, 언어적 요소들이 수용된 시기였다. 그래서 프로세스 아트는 이른바 포스트미니멀리즘의 한 경향으로 탈 미니멀리즘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미니멀 미술의 처음도 끝도 없는 견고함에 반대하여 과정미술의 작가들은 변화, 可滅性,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다루었다.
예술 개념이 다시 살아있는 진정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고급과 저급이라는 대분할이 아니라 그 둘을 하나로 포괄해 들일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예술 개념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대중예술 중에도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작품들이 많으며 미학의 영역 역시 포스트모더니즘 이래 확장되어 왔음. 대중예술
작품의 강박적인 성의 해석과 대립적인 파괴공간의 형태로 나타나게 하는 주원인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박미화, 「루이스 부르주아 : 자유를 찾은 누에」,『루이스 부르주아: 기억의 공간』(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00) pp. 39-40.
이와 같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더 나아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주
보급과, 세계 대전 등의 보수화 경향 및 사상적 대립에 의한 정체기
●1940년대-전쟁의 종결과 신건축의 보급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근대건축이 성립
●1950년대-1940년대 중반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근대건축의 주요 이론과 역사의 확립
●1960년대-새로운 이상적인 모델의 추구와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
작품뿐만 아니라 이들 두 사람의 동시대 회화에서 발견되고 있다.
입체파 건축
입체파는 예술적 사조에서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파벨 야낙은 이러한 추세에 공헌하였으며 소위 건축학적 큐비즘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였다. 그와 몇 몇 동료들은 1911-1914
관심을 더욱 기울였다.
그 결과 현재에 와서 웨그만의 애완견인 ‘만레이’와 함께한 작품들은 전시회 뿐 만이 아니라 출판물, 비디오테잎, TV출연의 형태로 끊임없이 미국에서 제시되고 있으며, 이제는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서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도상(icon)이 되었다.